강둑길을 따라 하얗게 흐트러지게 개망초가 피던 계절이 돌아왔다.
말순이는 잘 지내는지? 아이들이 시집 장가 갈 나이가 되었는데.....
어디 아프지는 않는지? 요즘은 세상이 하도 무서워서...
말순이는 이모부의 막내 여동생이다.
여름방학이면 초계시골(?)에서 도시(?)남지로 오빠네에 놀러오지만 또래가 없어 늘 우리 집에서 하루
종일을 함께 놀았다. 말순이와 나는 동갑내기이다.
촌수로 따지자면 사돈지간이지만 좋은 동무였다. 말순이는 말이 많지 않고 수더분하고 말 잘 듣고, 피
부는 좀 거무티티하지만 나와는 달리 머리숱도 많고 머리카락이 억세고, 힘세고 씩씩하고 착한 동무였다.
우리집에서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해서 소꿉놀이, 고무줄놀이 등 방학 내내 말순이와 놀았던 기억이 생생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말순이와 싸움이 붙었다. 나는 평상위에서, 말순이는 평상
아래에서.... 나는 말순이는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마음껏 때릴 수 있었다.
너무나 유리한 고지에서 (어
렸지만‘ 싸움을 하는 내내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
말순이는 아무리 힘이 세어도 내 발
목밖에 때릴 수가 없었다. 급기야 나는 평상 옆의 개망초를 뿌리 채 뽑아서 말순이 얼굴에 힘껏 내리쳤
다.
입으로 코로 흙덩이가... 말순이는 울면서 이모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이모와 엄마에게 혼 날 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되어도 집안은 조용하고 내 불안감은 점점 더 높아 갔다.
며
칠이 되어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고 나는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그
날 이후 말순이는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았고 그 사건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자 나
의 수치였다.
지은 죄가 있어 그 이후로도 말순이의 안부를 물을 수도 없었지만 말순이가 보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그 날의 그 기억이 떠오르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날의 그 싸움은 나의 승리가 아니었다. 정당한, 정의로운 싸움이 아니었다.‘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그렇지 못하
다’는 속담을 절절히 느낀 사건이었다.
세월이 흘러 큰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다. 입학식 날 아침, 학교교정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
분명 말순이 였다. 순간!! ‘모른 척 할까? ’잠시 갈등을 했다. 말순이는 나를 보고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초등 이후 처음 만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말순이와 둘이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입학식이 어떻게 끝났는지....
입학식 후 아들들과 함께 말순이 집으로 놀러갔다.
말순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살림살이 등 어색하
지 않은 편안한 환경이었다.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에 빠졌고 둘이 차를 마시며, 왜 남지에 잘 오지 않는
지 지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말순이는 그날의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그날 이후, 나는 말순이와의 정의롭지 못한 싸움에 대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자신을 고발할 수 있
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싸웠더라면 말순이에게 백전 백패임을 나는 잘 안다. 우리는 삶에서 언제나 유
리한 입장일 수가 없으며, 언제나 불리한 입장일 수도 없다.
아들들이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고 각자 바쁘다는 핑게로 또 말순이를 잊고 산다. 하지만 개망
초 속에 언제나 말순이가 있다.
지적장애인협회 창원시지부장 진철숙
새마산간호학원 원장 진철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