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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숙] 개망초 속에 고히 간직되어 있는 아름다운 추억
진철숙       조회 : 923  2015.07.20 18:15:38

 

 


강둑길을 따라 하얗게 흐트러지게 개망초가 피던 계절이 돌아왔다.

말순이는 잘 지내는지? 아이들이 시집 장가 갈 나이가 되었는데.....

어디 아프지는 않는지? 요즘은 세상이 하도 무서워서...

말순이는 이모부의 막내 여동생이다.

여름방학이면 초계시골(?)에서 도시(?)남지로 오빠네에 놀러오지만 또래가 없어 늘 우리 집에서 하루

종일을 함께 놀았다. 말순이와 나는 동갑내기이다.

촌수로 따지자면 사돈지간이지만 좋은 동무였다. 말순이는 말이 많지 않고 수더분하고 말 잘 듣고,

부는 좀 거무티티하지만 나와는 달리 머리숱도 많고 머리카락이 억세고, 힘세고 씩씩하고 착한 동무였다.

우리집에서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해서 소꿉놀이, 고무줄놀이 등 방학 내내 말순이와 놀았던 기억이 생생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말순이와 싸움이 붙었다. 나는 평상위에서, 말순이는 평상

아래에서.... 나는 말순이는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마음껏 때릴 수 있었다.

너무나 유리한 고지에서 ( 렸지만싸움을 하는 내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

말순이는 아무리 힘이 세어도 내 발 목밖에 때릴 수가 없었다. 급기야 나는 평상 옆의 개망초를 뿌리 채 뽑아서 말순이 얼굴에 힘껏 내리쳤 .

입으로 코로 흙덩이가... 말순이는 울면서 이모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이모와 엄마에게 혼 날 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되어도 집안은 조용하고 내 불안감은 점점 더 높아 갔다.

칠이 되어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고 나는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날 이후 말순이는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았고 그 사건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자 나 의 수치였다.

지은 죄가 있어 그 이후로도 말순이의 안부를 물을 수도 없었지만 말순이가 보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그 날의 그 기억이 떠오르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날의 그 싸움은 나의 승리가 아니었다. 정당한, 정의로운 싸움이 아니었다.‘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그렇지 못하 는 속담을 절절히 느낀 사건이었다.

 

세월이 흘러 큰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다. 입학식 날 아침, 학교교정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

분명 말순이 였다. 순간!! ‘모른 척 할까? ’잠시 갈등을 했다. 말순이는 나를 보고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초등 이후 처음 만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말순이와 둘이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입학식이 어떻게 끝났는지....

 

입학식 후 아들들과 함께 말순이 집으로 놀러갔다.

말순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살림살이 등 어색하 지 않은 편안한 환경이었다.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에 빠졌고 둘이 차를 마시며, 왜 남지에 잘 오지 않는 지 지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말순이는 그날의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그날 이후, 나는 말순이와의 정의롭지 못한 싸움에 대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자신을 고발할 수 있

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싸웠더라면 말순이에게 백전 백패임을 나는 잘 안다. 우리는 삶에서 언제나 유

리한 입장일 수가 없으며, 언제나 불리한 입장일 수도 없다.

 

아들들이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고 각자 바쁘다는 핑게로 또 말순이를 잊고 산다. 하지만 개망

초 속에 언제나 말순이가 있다.


지적장애인협회 창원시지부장 진철숙
새마산간호학원 원장 진철숙



comment : (6)
김홍돌 15-07-20 19:48
유년시절의 체험과 기억의 파편을 모아 정성스럽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갈무리한 이 글은 사람 사는 세상의 표지가 될 만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개인의 체험과 기억 속에 잠재해 있는 일상들을 연속적으로 전개하면서 정의와 희망의 ‘개망초’로 승화시킨 작품이기에 더욱 살갑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진철숙 15-07-22 09:38
김홍돌님 ~ 늘 좋은 말로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출근길에 마주했던 , 그리고 늘 가슴속에 있던 것을 그냥 아무렇게나 ... ㅎㅎ 꼭 작문시간에 선생님께 discussion 받는 기분입니다. 좋은 기분!!
이진중 15-07-20 21:34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읽듯이 아주 순박하고도 고운 글이네.
이렇듯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글로 사랑방을 채워 준 철숙이친구에게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네.
읽어내려가는데 지겹지않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을 개망초를 주제로 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진철숙 15-07-22 09:33
진중아 ~ 매일 아침 자산동 우리집에서 문신미술관 마산박물관 추산공원을 지나 임항선 철길 그린웨이를 지나는 출근길이 하루 중 유일한 힐링 시간이란다. 비에 젖은 개망초, 여름 코스모스, 담장에 드리워진 능소화 들이 더 아름답게 세상에 색칠하는 비 오는 아침이 참 좋더라 ~ 읽어 줘서 고맙고, 예쁜말로 꼬리까지 달아줘서 더 고마워!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읽는 거 싫어 하는데....
진철숙 15-07-22 09:16
바쁘신 총무님께서 제목도 멋지게 붙여주시고 좋은 사진도 첨부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오양환 15-07-22 09:49
별 말씀을... 내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센스가 조금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홈페이지에 새로운 추억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데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친구로 인하여 다른 새로운 것을 보게해주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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