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에서 작은 누나를 만났다. 반가웠다.
홍돌 친구가 누나를 초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누나에게 참 잘 해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고마움을 느낀다. 이래서 고향 친구가 좋은가 보다.
<우정이 흐르는 낙동강> 시집(
詩集
)을 들고 마산역에서 KTX를 탔다. 이 디카시집을 보고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물론 시의 내용도 그렇지만, 제3부 사진으로 쓰는 시를 보고 더욱 그러했다.
특집1 남지 개비리길 걷기대회
참가한 친구 모두가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넘친다. 어디서 이런 미남미녀들을 모았을까 하고 한참을 보았다. 마치 잘 만든 영화의 출연진들이 대단원을 끝내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이다. 이 시집의 이름과 가장 어울리는 개리길 걷기대회 사진을 보고, 내가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특집3 창녕 화왕산 등반대회
작년 연말에 창원에 있는 고교친구(박영석 한국주강 상무)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는 회사 야유회로 화왕산을 갔다고 한다. 내가 남지중 출신임을 아는 그는 남지중여중 252 동기회라고 플랭카드를 보고, 또래가 비슷해서 내가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활기찬 모습에 놀랐고, 252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252의 성장을 느끼며 자부심을 느낀다.
특집4 돌아보면 모두 그리움이다
학급별 단체사진을 보니 가슴이 찡하다. 특히 여중 단체사진은 더욱 그러했다. 어떻게 한 반에 72~73명이 수업을 했을까. 그리고 성사, 월영, 송진
초등학교 출신 여학생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비오는 날이나 추운 겨울에 그 먼 거리를 다녔어도 지각, 결석이 없었으니 말이다. 숫기 없는 남학생들이 자전거에 태워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모두 태워주고 싶은 심정이다. 고향 어머니의 인내심과 끈기는 여기서 나오는 것인가.
나는 <252인연>에 대하여 상념에 잠겨본다. ‘불교에서는 삶이 고통의 바다에 놓인 한 편의 돛단배 같다고 한다. 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인연을 맺는다는 게 얼마나 많은 과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그래서 그 사소한 인연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말한다.’고 했다.
우리는 다행히 선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향땅에 일찍 자리를 잡았기에 과거의 시간을 줄였다. 그 덕분으로 어려서부터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참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 중학교 때 읽은 미국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난다. 골짜기 마을 예언의 주인공이 된 ‘어니스트’처럼 이 시집에 있는 친구들이 큰 바위의 얼굴과 같다. 그래서 내일도 모레도 이 시집을 보며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자신이 그렇게 닮아 가려고 한다.
오늘 천리 길을 왕복했는데, 피곤하지 않다. 기분은 오히려 상쾌하다. 마치
어릴 때 우리 어머니들이 동네 마실 다녀온 기분처럼 흥이 난다.
살갑지 못한 내가 252동기회와 <우정이 흐르는 낙동강>의 매력에 푹 빠진다. “끝”